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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5-11-03 10:00
   북한 인권유린 실상 몇 가지(기독북한인연합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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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리중건
    조회 : 4,260  


1) 탈북여성 김춘애 (2003년 남한입국)의 증언

억울하고, 분하고, 하늘 끝에 올랐다 땅으로 뚝 떨어지는 심정이었다.
그러는 우리모녀의 심정엔 아랑곳없이 인신매매꾼들을 우리를 팔아 넘겼다.
그리고는 화룡 복동이란 곳의 길목을 지키다가 우리 모녀를 다시, 돈을 주고 사간 사람들의 손에서 빼앗으려고 하는 것이었다. 결국 싸움이 났다.
기회를 틈타 달아나는 우리 모녀를 판 놈, 사간 놈들이 개 무리처럼 뒤 쫒아 왔다.
그러는 와중에 주민들의 신고로 화룡시 공안원들이 개입했고 우리 모녀는 공안국 구류장을 거쳐 1999년 8월 10일 화룡 교두를 통해 북한의 무산군 보위부로 강제 압송되었다.

열 명의 여자들을 감방에 가두어놓고 옷을 벗겼다.
가슴 띠(브래지어)며 팬티까지 모두 벗겨 놓고는 손을 몸과 90도 방향으로 들게 했다.
 그리고는 각자 60번씩 안 잦다 일어 낮다 를 반복하게 했다.
그러면 여성들의 자궁이나 항문 속에 숨겨두었을지 모를 돈이 나온다는 것이었다.
다음에는 머리검사라는 것을 실시했다.
머리핀을 빼게 하고는 이 잡듯이 머리카락을 흩어 나갔다.
유방이 큰 여성은 따로 불러 이리저리 흔들어대며 무엇을 숨겼나 살펴보는 것이었다.

우리들 중 임산부가 한명 있었는데 “똥 뙈놈”의 씨를 받아왔다고 구두 발로 배를 걷어차는 것이었다. 한 여인은 태어 난지 두 달 밖에 안 된 어린 애를 안고 있었는데 역시 뙈놈의 씨라고 두꺼운 책으로 머리를 내려치는 것이었다.
보는 사람의 입에서조차 “악!”하는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때 우리모녀는 청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미국 놈의 바지”라면서 빼앗아 버렸다.
결국 우리는 속내의 바람으로 보위부에서 무산군안전부 단련대로 가게 되었다.
썩은 밀가루에 호박을 넣은 죽 한 사발을 먹고 낮에는 강제노동을, 밤에는 군대식 제식훈련을 해야 했으며 잠자리에 누워서도 빈대와 벼룩, 이들의 성화를 받아야 했다.

 [중도와 균형을 표방하는 신문-업 코리아(upkorea.net)]  05년9월12일

2) 탈북자 안명철(94년 남한도착)의 증언

저는 북한 정치범수용소 경비대원으로서 인권유린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정치범수용소는 종교의 흔적을 모조리 지워 버리는 곳이다.
많은 신앙인 중에서 제22호 38노동 분대의 한 노파를 잊을 수 없다.
그 노파는 독실한 기독교신자로서 작업 중이나 잠자리에서나 기도하였다.
하루는 어린이가 옥수수를 차에 제대로 싣지 못한다고
보위요원에게 몹시 맞는 것을 본 그는 나직이 기도했다. 
곧바로 보위요원들은 군화발로 그 노파를 짓밟으며
"이 미친년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나"하고 소리 질렀다.
무지하게 맞은 노파는 그 날부터 누워 있어야 했다.
(북한인권 시민연합 잡지[인권과 생명] 1999년 여름 호, 14 쪽)


 3) 탈북자 강철환(92년 남한도착)의 증언

삼대를 멸족시킬 대상의 하나로 꼽는 것이 종교인들이다.
내가 있던 함남도 요덕 정치범수용소에도 몇 명의 기독교인들이 있었다.
그들은 다른 정치범들 보다 더 혹독한 강제노동을 받아야 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단 한번만 부인해도 집으로 돌아 갈 수 있다고 해도
왜 자신들을 끔찍한 수용소생활에 맡기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남한에 와서 기독교인이 된 후로 그들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북한인권 시민연합 잡지 [생명과 인권]1999년 여름 호, 18∼19쪽)


4) 탈북자 안혁(92년 남한입국)의 체험한 사실

황북도 사리원 목사의 딸이 자녀들과 함께 내가 있던 요덕수용소에 끌려왔다.
남정들도 굶주림과 고역으로 견디기 힘든데 아 여자에게
가장 더럽고 힘든 일을 시키면서 기도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지 말라 강압하였다.
특히 생활총화 때마다 집중적인 사상투쟁대상이 되어 비판무대에 세워지군 하였다.
그 때마다 그 여인은 기도를 안 하겠다 거나 하나님을 안 믿겠다는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단지 일을 더 잘하겠다는 말만 반복하였다.
사실 그 여인만큼 성실하고 정직하게 일하는 사람은 없었다.
기도를 한다고 혹독한 대우를 하는 것을 보아 기도라는 것은
간첩 흉계나 꾸미는 것만큼 나쁜 행위인가 하고 우리는 생각하였다.
그런데 지내보니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말 견디기 힘들 때에 그 여인은 눈을 감고 하늘을 우러러
"주여, 주여"하며 속삭이듯 하는 것이 기도인 것 같았다.
-
어느 날 새벽, 아이들과 여자의 비명소리가 나서 보니
정치보위부 측은 그 여인의 가족을 강제로 차에 태우고 있었다.
다시 살아나올 수 없는 수용소 안의 수용소인 완전통제구역으로 끌고 가는 것이다.
 (안혁 저. “요덕리스트” 1994. 도서출판 천디미디어)


5) 탈북소년의 수기
<아, 이럴 수가! 성폭행으로 숨진 내 누나> 
 
 어머니와 누나, 나에게 하나씩 주라고 하더니
<이제부터 한마디 물어봐서 말 안하면 한사람이 3대씩 힘껏 때리라> 고 하였습니다.
저도 3번이나 9대를 아버지를 때렸습니다.
그래도 아버지는 <나는 그런 걸 모른다. 나는 당에 떳떳하다>면서 겨우겨우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보위원들은 <이 새끼 이래서는 안 되겠다> 하면서 어머니와 누나를 발가벗기더니 마당에 광산에서 쓰는 광차가 4개 있었는데 거기에 물을 꼴뚝 (가득)채워 둔 것이 얼어서 곡괭이로 깨더니 (까더니)그 안에 들어가라고 하였습니다.
어머니와 누나는 울면서 발악하니까 선생들이 얼음 속에다 엄마와 누나를 넣고 나오지 못하게 꼭대기에서 발로 누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아버지 앞에 다시세우고 아버지의 죄를 불게하면 <너희는 집에 갈수 있다>면서 시켰습니다, 제대로 말을 하지 않는다고 꽁꽁 언 어머니와 누나의 온몸을 군관 혁 띠로 때렸습니다.

또 보위원 한 명은 우리어머니의 두 다리 사이를 벌리게 하고 <이년 까치둥지 멋있다>하면서 엄마의 아랫도리 털을 당기면서 뽑았습니다, 다른 보위원은 누나에게 <야, 너 대학 다닐 때 아 새끼들과 (청년들)몇 판 했나?>하고 물으니까 누나가 울면서 <한 번도 그런 일이 없다.>고 하니까 거짓말한다면서 <벌려라 보자, 검열 하겠다>하면서 맨땅바닥에 눕게 하더니 다리를 하늘공중에 벌리라고 하더니 신발 신은채로 누나의 아랫도리를 후벼대며 그리고는 각자 몽둥이로 비비면서 <쌍년 많이 놀아 봤구먼 그래도 거짓말이야> 하더니 <거짓말 한 대가다, 너 처벌이다> 하더니 가스라이터를 크게 올리더니 <움직이면 밟아 죽인다.>하면서 소리치며 누나의 밑에 불을 달아 놓았습니다.
누나가 악! 소리치며 비트니까 보위원들은 와하고 재미있다고 하면서 고아댔습니다.

그날 우리가족은 모두 죽는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가 기절한 후 정신을 못 차리자 그때에야 조사가 끝났습니다,

그 후 10일이 지나서....아버지는 기둥에 묶어놓고 나는 어머니와 함께 묶어놓더니 누나를 보면서 <이년은 이안에 온지 1년 이 되 오는 데 두 아직 고기 좀 붙어 있구나, 뭘 도적질해 먹 구 고기 안 빠졌나?> 하더니 누나에게 <네년 이상하다. 왜 고기가 안 빠지는지 검열해 봐야겠다.>면서 억지로 옷을 벗겼습니다.

아버지가 묶인 곳에 가마니와 갈대로 만든 나래가 있었는데 그걸 끌어다가 누나에게 누우라고 하더니 <이 간나 때 호미로 긁을 지경이다. 더러워서 못 보겠다.>하더니 지하 족을 벗고 발 사개 하나를 주면서 광차 속에 있는 물에 적셔서 밑을 깨끗이 닦으라고 했습니다. 
 
누나가 접어드는 두 보위원에게 반항하자 몇 대 때리더니 말아 피우던 독초꽁초를(담배가 없어 잎담배를 신문지로 말아 피움)누나의 젖꼭지에 비벼대며 죽여 버린다고 하면서 누나를 땅바닥에 쓰러뜨리고 누나의 얼굴 우에 엉덩이를 대고 눌러앉아 두 손을 발로 눌렀습니다, 그래도 누나가 발버둥치자 손과 발을 따로따로 묶었습니다.
발 하나는 아버지가 묶인 기둥에, 다른 발은 어머니의 몸과 나무 무지에 묶고 두 손은 기둥과 광차 손잡이에 묶어 놓더니 <이 간나, 오늘 걸레 만들겠다.>면서 강간했습니다.

아버지에게는 이래도 불지 않느냐 하면서 이런 독종새끼니까 안기부 밀정한다면서 아버지를 풀어 얼음물에 잠그려고 하였습니다. 그때 아버지는 있는 힘을 다하여 보위원의 옆구리에 매달려 있는 총창을 비틀어 잡고 자기 배에 힘껏 찔러 자살했습니다. 칼집채로 박히다보니 아버지 주변에 피가 숱해 흘렀습니다.  그때 엄마가 또 기절하면서 신경이 돌아 다음날 정신병자 병동에 들어가 있다가 어느 날 변소 칸에서 인분을 세 사발 되게 먹고 죽었습니다.

누나도 잡병이 많이 와서 계속 앓았는데 아버지, 엄마가 죽은 후 머리가 돌아 정신이 들락날락 했습니다, 나는 하나 남은 누나를 살려보려고 내게 나오는 음식을 몰래 누나의 호실에 던져 넣었습니다. 
누나는 점점 약해져서 정말 귀신처럼 되었습니다.
머리도 마구 깎아 놔서 어떨 때는 누나를 찾기도 힘들었습니다.

평양에 있을 때 우리누나는 너무 고와서(예뻐서) 화보에도(잡지)나고 청년문학에도 나고 하였습니다. 성격도 조용하고 말이 적고 례절이(예의)밝아서 대학에서랑 누나를 아는 사람들은 다 칭찬했습니다. 그러나 감옥에 온 후 별의별 고생을 다 당하고 별의별 일을 다 당하면서 누나는 병신이 되고 페짝이 (페인) 되었습니다.
 
점심시간이 되어 감자구워 먹는다고 경비 서던 보위원까지 불더미에 간 사이 남자죄수 3명이 누나에게 달려들어 강간하는데 누나가 저 혼자 죽었습니다.
보위원들은 뻔히 기색을 알면서도 <도적질해 먹으니까 죄 만나 죽지>하면서 감자 캔 줄기로 덮으라고 했습니다. 누나의 시체를 보니 입안에는 감자 썩은 것이 흙과 함께 있었습니다. 그래서 손가락으로 입안의 흙과 썩은 감자를 파내면서 누나를 안고 우는데 보위원이 달려와 나를 때리면서 반장에게 소리쳐 나를 데려가라 하더니 가마니에 말아서 누나를 가져갔습니다.

나는 며칠을 몰래 울며 보냈습니다. 우는 것이 보위원들에게 들키면 반혁명분자를 동정한다하면서 사상투쟁무대에 세우기 때문에 우는 것도 들키지 말아야 했습니다.
...
철이 형과 나는 중국 들어오는 정광방통에 숨어서 10월5일 날 중국 안도라는 곳에 도착했습니다,  조선사람 식당에서 밥 먹고 나오는데 이렇게 한국에서 온 기자 삼춘을 만나게 되였습니다.  기자 삼춘이 편지를 쓰라고 해서 지금 쓰는 이 편지가 남조선 사람들에게 전달된다고 하니 아버지, 엄마, 누나생각이 더 나면서 울음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저를 도와주십시오.
은혜를 잊지 않고 꼭 갚겠습니다.

[중도와 균형을 표방하는 신문-업 코리아(upkorea.net)] 05년 9월20일
 

 

 
 
[이 게시물은 웹지기님에 의해 2012-01-18 11:26:55 letter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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