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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6-08-05 01:12
   남에서 공산주의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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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이민복
    조회 : 3,447  


김진홍 목사 사모 간증 
 <골고루 함께 잘 살자!>라는 말은 참으로 듣기 좋은 말이다.
두레마을공동체가 바로 모범으로 보여 밖에서 많은 찬사를 보낸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그런 칭찬을 받을 만한 것이 아니었다.
가령 오갈 때 없는 할머니들을 두레마을에서 보살폈다.
그런데 그 다음 오는 이들을
먼저 온 할머니들이 작당하여 배척하는 것이었다.
지난 자기처지를 생각해서 기쁘게 맞아 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두레마을에는 지구상의 인간모형은 다 모였다.
의로운 사람, 순진한 사람, 살인, 강간, 절도, 사기, 폭력, 건달, 지체장애인 등 등
따라서 인간의 속성을 다 엿볼 수 있는 조건이었다.

사람은 거저 밥 주고 재워주면 감사해서 더 잘 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았다.
거저 받으면 더 놀고먹었다.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열심히 일하는 이들보고 바보같이 왜 일하냐고 잡아당기기도 한다.
따라서 뭘 좀 하자는 이들은 떠나 버리지 않고서는 배겨날 수 없었다.

사랑은 무작정하는 것이 아니다.
한번은 30살을 넘긴 거지 중에 상거지가 찾아왔다.
솔직히 사랑해서보다 너무 더러워 목욕시키고 목사님 옷으로 일체 갈아 입혔다.
10대부터 노숙하며 껌 하나 들고 살았다.
사람들은 대체로 껌을 사는 것이 아니라
불쌍하다고 그냥 돈을 주고 가는데 그것으로 연명하였다.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어설프게 도둑질하다 감옥에 간다는 것이다.
그는 전과 17범으로 감옥과 길거리가 자기 집이었다.

그러던 그가 매끼 따뜻한 밥과 깨끗한 방의 이불을 쓰고 살게 되었다.
또 만나는 사람마다 오빠, 형님하며 존댓말을 들으며 살게 되었다.
그런데 그것이 고통이다. 평생 찬밥에 찬 방, 감옥, 욕설이 익숙하여 불편한 것이다.
한 시도 안절부절 못하다가 도끼로 발등을 찍어 입원하였다가 돌아 온 날로
비닐박막을 깔고 노숙상태에서 자는 것이다.

그는 김진홍 목사에게 간절히 소원하기를 노숙자 수용소에 보내달라는 것이다.
자라온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 가를 느낄 수 있지만
또한 우리의 자대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수용소에서 특별히 부탁할 필요 없이 잘 있었다.

인간은 매우 간사하다.
나의 별명은 공동체마누라, 남편이 별명을 달 만큼 180명의 식구를 거느리고 살아왔다.
그런데 요 몇 년 동안 우리가족만 살게 되었는데 남이 오면 불편을 느낀다.
인간을 7번에 70번 용서하라는 말씀은 잘못된 것을 보고도 가만있으라는 뜻이 아니다.
<두부사건>때도 김진홍 목사와 달리 자신은 강하게 추궁하여 사람들을 회개토록 하였다.

인간의 죄 성으로 공산주의는 불가능.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 개인적 양심을 가지는 것이 매우 중요- 그것이 신앙.
 
[이 게시물은 웹지기님에 의해 2012-01-18 11:26:55 letter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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